Hyun Hwan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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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19 열정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자기 일에 온갖 노력과 시간을 바쳐 힘들고 지친 주인공을 미화시킬 때가 종종 있다. 아무리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중요시 여기는 21세기라고 하지만, 그런 캐릭터들을 유심히 쳐다보면 부럽기 마련이다. 나도 어느 한 관심분야에 미칠 정도의 열정을 느껴보고 싶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배고픔을 까먹어 보고 싶고,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에 눈이 풀릴 때까지 일에 몰두해보고 싶다.

허나 열정이라는 것은 운명처럼 나를 스쳐 지나가지도 나의 시선을 잡아 당기지도 않는다. 열정을 양성하는 과정이란 오직 내 노력과 시간의 투자를 통해 진행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직선적 인과 관계를 알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어떤 부류의 또라이일까? 왜 남이 하면 멋있는데 내가 하면 귀찮을까. 답답하다. 내 머리 속에 자리 잡은 논리적 모순이 나의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내가 내 자신에게 지는 느낌.. 공허하다.

졸업식이 가까워져서 일까, 어른이 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내 자신을 비평하는 틀이 나날이 조여지는 것 같다. 자아 발전 이란 어린 새싹을 커다란 나무로 키우는 것인가 울퉁불퉁한 바위를 뚜렷한 조각상으로 구체화하는 것인가. 혹은 새싹 주변 잡초를 제거해주는 것인가.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보고 실망하지만 내일의 나를 핑계대며 역사는 되풀이한다. 오늘도 이 패턴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