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18
대학교 2학년 1학기 2016년 9월 8일- 아버지가 보낸 이메일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때까지 살아온 20년간 처음으로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걱정과 격러를 표현하셨다. 강하게 키우려고 했던 아버지가 지나쳤는가 싶은 생각에 잠들기가 어렵다고, 늘 아버지 마음을 어떻게 아들에게 전달할까 고민 하신다고...사랑표현을 어색해 하시는 아버지에 감동을 먹었는지 나도 모르게 코가 훌쩍이고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가끔 힘들때 아버지 글을 자주 읽어보곤 한다. 그리곤 반성한다.
나는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고생을 못 겪은 것도 아니다. 단지 부모님과 누나가, 내 어린 마음과 생각을 보호해주겠다는 의지로 협조해, 아무리 힘든 시기여도 내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챙겨주었다. 말 그대로 온실안에 화초였다. 아버지는 자식 교육을 가장 중요시 여기셔, 아무리 돈 문제가 있어도 우리 남매의 행보를 우선 챙기셨다. 우리 가족은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3년 동안 원룸에서 지냈다. 아파트도 아닌 상가에서. 침대 2개를 붙힌 구석에 4명이 매일 잠들었다. 고등학교때 배구 토너먼트를 하면서 팀원들 각자 일본 국제학생들을 재워줄 필요가 있었는데, 나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자리가 없다고 설명했어야 했다. 뒤돌아보면 정말 창피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그 시절 나는 정말 당당했다. 자리가 없는건 그냥 팩트였다. 우리 가족이 원룸에 살림을 차리는 걸 당연스럽게 여겼다. 이게 우리 집인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부모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았으면 그렇게 뻔한 현실에서도 얼굴을 돌릴 수 있었을까. 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한테 무시당하고 꿀릴까 봐 그랬다고 하신다..
그런면에서 아버지는 감정 표현을 서툴어 하시지만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 하나는 쉽게 느낄 수 있다. 내가 아들이여서 그런걸까. 아버지의 말씀이나 행동을 떠나, 눈빛을 보면 안다. 아버지의 눈빛은 무겁지만 부드럽고, 깊지만 밝다. 그리고 표현하지 못하셨던 사랑으로 넘쳐난다. 오늘도 조금 힘들다는 생각에 아버지의 글을 다시 읽고, 아버지 생각을 다시한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싶다는 생각이 든다.